한국 사업 어려워 미국행 닥치는 대로 육체노동하다 채용 광고보고 트러커 지원
3년 차 임금 마일당 40센트 식사·생리현상 차에서 해결 "힘들지만 일상의 행복 감사" 아침 8시. 석승환씨는 2007년형 낡은 캠리를 타고 40분 거리에 있는 콜턴시의 한 화물회사에 출근한다. 그가 운행해야 할 화물차는 길이 53피트, 높이 13.6피트의 대형 화물차 '데이캡(Day Cap)'이다. 승용차 4대와 맞먹는 길이다. 석씨는 운행 전 차량 엔진룸을 열어 냉각수가 충분한지 오일은 새고 있지 않은지 꼼꼼히 점검한다. 작은 고장이라도 무시했다간 덩치 큰 화물차는 한순간에 대형 사고를 낼 수 있다.
"저만 모는 차가 아니거든요. 운전 습관이 다른 기사들도 함께 타기 때문에 바퀴 마모 상태 등 세세히 점검해야 해요."
석씨는 문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2미터 높이의 운전석에 뛰어오르듯 올랐다. 조수석에 기자도 함께 탔다. 실내 공간은 의외로 어른 한 명이 겨우 누울 수 있을 정도로 좁다. 석씨는 운행 데이터가 기록되는 내비게이션 크기의 컴퓨터를 켜고 시동을 걸었다. 개스(가속 페달)를 밟자 480마력의 엔진이 굉음을 뿜어내며 출발한다. 널따란 도로가 골목길 마냥 좁아 든 기분이다.
"오늘 목적지는 샌디에이고 북쪽도시 '샌티'입니다. 리버사이드 월마트에 들러 화물이 실린 트레일러를 연결해서 샌티에 있는 월마트로 가야합니다."
달리는 차창 너머로 양털을 깎아 놓은 듯 키 작은 덤불이 산맥을 따라 듬성듬성 나 있고 한적한 말 농장이 펼쳐진다. 그는 특히 바닷가 도로나 포도밭 같은 자연 풍경을 좋아한다.
"주말에 교통 체증 없는 도로를 달리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시골길을 달릴 때는 마치 여행 떠난 것처럼 설레기도 해요."
석씨는 서울에서 건축업과 인터넷 사업을 하며 미국에 먼저 간 아내와 아들에게 생활비를 보내던 '기러기 아빠'였다. 그러다 한국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6년 전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왔다. 하지만 미국에 생활터전으로 마련했던 비디오 대여점마저 적자가 계속됐고, 집 렌트비를 못내 강제 퇴거 명령을 받았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어요. 골프장에서 공을 줍기도 하고 택시 운전에 수학과외 교사를 하기도 했어요. 한국 생활 거품이 빠지는데 몇 년 걸리더라고요."
그러다 3년 전 우연히 인터넷에 올려진 화물차 운전기사 채용 공고를 접했다. 경험이 없어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기에 지원했다.
화물 운송회사에 입사해 2주간 무료 교육을 받고 '상업운전면허증(CDL)'을 땄다. 무료 교육의 대가로 9주 동안 최저임금만 받고 일을 해야 했다. 그때 몸무게가 20파운드 빠졌다고 한다.
"초보 트러커는 일이 익숙해질 때까지 상급자와 동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 운행은 조수들이 다 해요. 체력 소모가 큰데다 운전중 조금만 실수하면 상급자가 꾸짖고…. 스트레스도 심했어요."
트럭 기사는 취직하기 어렵지는 않다. 미국트럭운송협회에 따르면 연간 부족한 화물 운전기사수는 3만5000명~4만 명에 달한다. 장기간 운전대를 잡아야 하고 가족과 보낼 시간도 적다 보니 기피 업종이 된 것이다.
회사에 소속된 석씨의 임금은 마일당 40센트다. 대형 화물차를 소유한 운전자의 경우 마일당 1달러다. 대신 기름값과 보험료 등 기타비용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장거리 트러커들에게 가장 곤란한 문제는 생리현상이라고 한다. 휴게소에 들르면 된다고들 생각지만 속 모르는 소리다. 숙련된 기사가 아니라면 덩치 큰 화물차를 후진 주차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실수해도 다른 차량이나 시설물을 들이받을 수 있다.
"차라리 음료수를 최대한 마시지 않기로 했죠. 그래도 급할 때는 차를 갓길에 세우고 차바퀴 안쪽으로 들어가 대충 해결해요."
밥도 운전 중에 먹는다. 트러커에게 시간은 돈이다. 석씨는 과자나 바나나 등 간식거리를 머리 위 선반이나 조수석 등 손이 닿는 곳에 두고 먹는다. 허기만 때우다 보니 늦은 시간 귀가해 과식하는 버릇이 생겼다.
석씨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3시간 만에 목적지 샌티에 도착했다. 매장 뒤쪽 물류창고에 화물차를 붙이고 화물을 내릴 준비를 하는데 석씨의 표정이 좋지 않다. 매장 직원들이 느긋하게 걸어온다.
"마트 직원들은 일당을 받지만 저는 시간이 돈이거든요. 빨리 끝내고 또 배달을 가야하니까요."
애가 탄 석씨는 내려서 물건 내리는 일을 돕는다. 그 성실함 덕택에 석씨는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트러커들이 선호하는 코스에 배정됐다.
배달을 마치고 오후 5시 녹초가 된 몸으로 회사로 돌아왔지만 2건의 추가 배송 업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8시간 남짓 운전해 번 돈은 약 300달러 정도다.
일이 고된 만큼 퇴근은 기다려진다. 아내와 한국 TV 프로그램을 함께 보며 맥주 한 잔 마시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일상의 행복이다. 아들도 대학을 졸업해 IT기업에 입사했다.
"경제적으로 바닥을 쳤는데 화물차 운전이 저를 일으켜 세워줬어요. 고맙죠."
최근 석씨는 또 다른 비상을 꿈꾼다. '장거리 인생 목적지'로 가기 위한 보험 전문가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트러커를 하면서 틈틈이 보험일도 병행하려 한다.
"인생 2막을 준비 중인 한인들이 있다면 나이나 경험 때문에 위축되지 말고 무슨 일이든지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기회는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온다고 하잖아요."
트러커가 되려면
가장 먼저 상업운전면허증인 CDL(Commercial Driving License)이 필요하다. CDL은 각 지역 전문 운전학교에서 3000~4000달러를 내면 배울 수 있다. 면허 취득까지는 4~10주 정도 걸린다.
석씨처럼 대형 트럭 운송회사에 입사해 위탁교육을 통해 면허를 딸 수도 있다.
시험은 필기와 인스펙션, 주행으로 나뉜다. 모두 영어로 봐야한다. 특히 인스펙션은 시험관에게 차량 정비 방법 등을 영어로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한인들에게 난관이다. 하지만 운전학원에서 가르쳐준 범위 내에서 시험이 치러지기 때문에 수업만 잘 따라가면 어렵지 않다.
CDL 시험 자격은 최소 21세, 고졸 이상 학력이 필요하다. 마약류 테스트와 신원조회도 거친다.
급여는 운전자의 운전경력과 근무시간, 화물차 소유 여부에 따라 다르다. 미국트럭운송협회에 따르면 평균 연봉은 약 4만 달러 수준이다. 5년에서 7년 정도 일할 경우 평균적으로 연간 5만5000달러를 받는다. 화학약품 등 위험 물질 운반하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운행 장소가 일정하고 상여금 등 처우조건이 좋아 트럭기사들에게 '꿈의 직장'인 월마트에 취직하면 평균 연봉은 7만3000달러다. (미주 중앙 일보) |